우울증은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대표적인 정신건강 문제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국내 환자는 약 100만 명에 달하며, 전년 대비 9.3% 증가했다. 특히 20~30대 환자 수는 지난 5년간 각각 1.8배, 1.7배 증가했다. 단순한 슬픔을 넘어 삶의 흥미를 잃고 무기력감에 잠식되는 우울증은 사회 전반의 심리적 위기로 떠올랐다.

한 정신과 전문의가 '고기능 우울증'을 회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울증은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대표적인 정신건강 문제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국내 환자는 약 100만 명에 달하며, 전년 대비 9.3% 증가했다. 특히 20~30대 환자 수는 지난 5년간 각각 1.8배, 1.7배 증가했다. 단순한 슬픔을 넘어 삶의 흥미를 잃고 무기력감에 잠식되는 우울증은 사회 전반의 심리적 위기로 떠올랐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있다. 바로 ‘고기능 우울’이다. 이는 공식 질병명은 아니지만, 임상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으로,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잘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우울감이 자리 잡은 상태를 의미한다.
겉보기에 문제없어, 일반 우울증과 달라
고기능 우울은 전형적인 우울증과는 차이가 있다. 주요 우울장애는 겉으로도 무기력함, 집중력 저하, 의욕 상실 등이 뚜렷하게 드러나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기능 우울은 학업, 직장, 가정 등에서 겉보기에 문제없이 기능을 '잘' 수행한다. 일반적인 주요 우울장애는 보통 몇 주에서 몇 달 단위로 갑자기 증상이 두드러지는 반면, 고기능 우울은 우울감이 수개월에서 수년간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쉽다.
고기능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먼저 성과 중심적이고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꼽힌다. 학업과 취업, 직장에서의 끊임없는 압박, 고용 불안·주거비 상승 등으로 인한 경제적 스트레스, ‘빨리빨리’ 문화 등은 개인의 정서적 여유를 앗아간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신건강 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또한 1인 가구 증가와 비대면 일상의 확산은 정서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외로움과 무력감을 높인다. 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립감, 불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특히 젊은 세대의 심리에 깊이 뿌리내렸다”며 “겉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이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괜찮은 척’하는 방어기제, 심리적 고립 유발
고기능 우울을 겪는 이들은 자신의 내면 상태를 철저히 숨기려 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조차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고기능 우울을 앓는 사람이 외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 내면의 고통은 더 깊어지고 외로워질 수 있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성민 전문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인정받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며 “이런 불안을 감추기 위해 ‘과잉 보상’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잉 보상이란 자신의 결핍이나 불안을 감추기 위해 그 반대 방향으로 과도하게 노력하거나 감정을 과장해 표현하는 심리적 기제를 말한다. 우울함을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스스로도 그 감정을 외면한 채 ‘괜찮은 척’ 한다는 것이다.
감정이 장기간 방치되면, 더 깊은 심리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정성민 전문의는 “마음의 고통이 깊어지면 점점 더 내면으로 숨어들고, 결국에는 마음 속 가장 깊은 동굴 속에 갇히게 된다”고 했다.
나도 고기능 우울증? 자가 진단해보기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주디스 조셉 박사는 저서 ‘고기능: 숨겨진 우울을 극복하고 기쁨을 되찾는 법’에서 고기능 우울의 자가 진단 항목을 제시했다. ▲감정 표현이 어렵게 느껴지는가 ▲‘괜찮은 척’하며 주변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는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가 ▲삶에 만족하면서도 동시에 공허함을 느끼는가 등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가 인식을 돕기 위한 도구이며, 공식적인 진단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위 항목 중 일부라도 해당된다면 전문가 상담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정성민 전문의는 “고기능 우울을 겪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문제없다고 여겨 치료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한 체크리스트라도 해당이 된다면 한 번은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이나 지인 등 가까운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감정 표현하기, 영화 속 인물 따라 하는 방법도
고기능 우울의 치료는 일반적인 우울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적절한 심리치료가 진행되며, 경우에 따라 약물 치료가 병행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회복 방법들이 있다. 조셉 박사는 ▲감정 인정하기 ▲건강하게 감정 표현하기 ▲삶의 가치 재발견하기 ▲신체 건강 챙기기 ▲비전 그리기를 제안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 나오는 인물의 상황과 감정 표현을 보며 이를 직접 흉내 내보는 것도 좋다. 임명호 교수는 “이를 감정 모방이라고 한다”며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에서, 감정 인지와 표현 회로를 자극하는 방법이다”고 했다. 실제로 역할극, 연기 치료 등도 감정 회복 치료법으로 사용된다.